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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만 좇고, 1

사랑, 이 큰 구원 2020. 11. 16. 07:14

내 말만 좇고, 1

지난 말씀 이후 날자가 제법 지났습니다. 글씨가 작아서 힘들다는 분이 계서서 

글자를 조금 키워 봤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힘입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싱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럼 다음 말씀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번에 이어서 리브가로 말미암아 야곱이 복을 

받는 창세기 27장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들에게,

"들에 가서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면, 내가 그걸 먹고 마음껏 너를 축복하겠다."

하고 약속을 했는데, 그 말을 따라 에서는 사냥하러 들에 나깠습니다. 

리브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네 형에게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면 네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내가 들었으니, 너는 빨리 가서 염소 한 마리를 가져 오너라. 내가 염소 새끼를

가지고 아버지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 테니, 너는 그걸 가지고 가서 복을 받으라."

그러자 야곱은 창세기 27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형 에서는 털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 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까 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에서는 털이 많고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기 때문에 에서인지 아닌지 금방 구분할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속이는 자가 되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한

야곱의 말은 정당한 말이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곱의 마음 속에서 믿음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야곱의

마음에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있었습니다만, 아버지가 눈

이 어둡더라도 만져보면 금방 알기 때문에,

'그러면 나는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어! 나는 복을 받을 수 없어!' 하고 포기하는 마음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야곱의 말은 당연 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야곱은 자기를 믿는 믿음이 아닌, 어머니를 믿는 믿음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갔습니다.

자기가 볼 때는 복을 받기는 커녕 틀림없이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엇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를 믿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의 어떤 행위나 노력이 아닌, 어머니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그리고 어머니는 야곱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일을 다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러운 마음이 아닌,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입니다. 야곱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 자기는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축복은 커녕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자기 생각을 다 벗어

버리고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믿었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그것은, "네 생각 가운데 내 말을 염두에 둬라. 내 말도 좀 기억을 하고, 네 생각에 

좀 보태서 일을해라."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재 너의 생각은 어떠하든지 간에

"내 말만 좇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겠다.' 하는 두려움 속에 있었는데, "내 말만 좇고," 하는 어머니의 말을 

믿는 믿음으로 염소새끼를 가져와서 아버지 앞에 들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리브가가 강조한 것은

"내 말만 좇고"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 

형편과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형편을 바라보면, 늘 보족하고 연약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전혀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리브가의 말을 좇고 나아갔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

처럼 더럽고 추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2절에 보면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2절에서는 왜 '범죄치 아니한' 이 부분을 강조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치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나

수고로나 아무리 애써봐야 우리는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도저히 지옥에 내어 보낼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우리를 구원하실지, 어떻게 해야 국에 보낼 수

있는지를 생각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말씀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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