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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구원은 '사마리아인이 모든 일을 하는 것'

사랑, 이 큰 구원 2022. 7. 15. 09:35

진정한 구원은 '사마리아인이 모든 일을 하는 것'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 갔습니다. 그때마다 강도 만난 자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

주지 않으면 나는 죽는데.....,' 죽음이 다가왔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때 세 번

째로 사마리아인이 왔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3절에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 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이 말씀에서 '거기'가 어디입니까?  강도 만난 자가 쓰러져 있는 곳, 기쁨과 소망이

없는 곳, 절망뿐인 곳, 죽음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이 거기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강도를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메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누가복음 10:34)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할 때 선한 사마리아인이 모든 것을 했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거나 무엇을 열심히 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예

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내가 일하거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

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100% 일하셔야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구원 받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한 사람은 멸

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고 예수님이 하

신 것만 받아들인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이

불쌍히 여겼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름과 포

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맸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강도 만난 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지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게  지내며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그 후 배가

고파서 돼지를 쳤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그때 탕지는 아

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아직 거리가 먼데도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목

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둘째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아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도 탕자는 여전히 배

가 고프고 더럽고 비참합니다. 언제 그가 깨끗하게 됩니까? 언제 그가 배부르게 됩

니까? 언제 그가 복되게 됩니까? 아버지의 입에서 말씀이 떨어질 때입니다. 아버지

가 말합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질 때 종들이 움직였습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을

목욕시키고, 깨끗하고 멋진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고, 살

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에서 말씀이 떨어지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둘째 아들은 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버지의 입에서

말씀이 떨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

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

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 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여기서 '그'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 죄를 에수님께 넘기거나 죄를 씻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넘긴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

나 모든 사람의 죄악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넘기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예수

님에게  넘긴다면 완벽하게 넘길 수 없습니다.한두 가지가 아니라 천 가지, 만 가지

되는 죄를 어떻게 완벽하게 넘기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죄를 넘기는 일은 하나

님이 맡으셨습니다.

"...여호와 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그와 마찬가지로 강도 만난 자가 구원 받는 이야기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마리아 인으로  등장한 예

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다윗 왕 시대에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 성에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법

궤가 있었던 아비나답 집에서 수레에 법궤를 싣고 웃사와 아효가 스레를 몰았습니

다. 그런데 중간에 수레를 끌던 소가 뛰자 법궤가 땅에 떨어질까봐  웃사가 얼른 붙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 하셔서 웃사를 쳐 웃사가 그자리에서 죽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넘어지는 우리를 붙들어 주셔

야지, 인간이 하나님을 붙든  것은 너무 교만한 일입니다.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나

님이 넘어지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일하는 것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진정

으로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여름 캠프가 시작 됩니다.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힐링하시고.영원한 속죄를 받으시기바랍니다.

대덕과 강릉에서 진행하는 캠프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많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께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